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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특별한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

by pianovella 2022.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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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리 소콜로프

 

피아니스트들이 존경하는 피아니스트

'그의 연주는 사라진 옛 러시아 피아니즘의 시대를 다시 보여주는 듯했다'(더 가디언, 2007)

'소콜로프는 많은 이들에게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피아노의 도스토예프스키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광대하며, 마지막 한 방울의 깊은 심연까지 쥐어짜 내 우리에게 보여준다'(International Piano,2006)

 

그를 향한 한 줄 평에서 한눈에 알 수 있듯 명실상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인 그리고리 소콜로프는 지금은 별이 된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이후에 마지막 남은 유일한 비르투오소라 불려지는 거장이다.

1950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5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7살 때 레닌그라드 음악원(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리야 젤리흐만에게 사사하였고 먼저 지휘자를 지망했다가 피아니스트로 진로를 바꾼 것이 특이한 점이며, 12살 때 모스크바에서 첫 리사이틀을 열고 대부분의 예술가들처럼 '신동'으로 알려졌다. 성실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소년은 16살이 되던 1966년, 제3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심사위원 만장일치)을 하며 전 세계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때의 소콜로프는 완전한 무명의 어린 학생이었고 심지어 협주곡을 연주하는 파이널 라운드에서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택했는데 일반적으로 스케일이 크고 기상이 넘치는 차이코프스키나 프로코피예프,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연주해야 우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엎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함으로써 더욱 충격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등장했으나 실황 연주들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점점 일반 대중들에게 명성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언론에 노출되는 것과 리코딩 작업을 꺼리는 성격 때문에 그 실력에 비해 인지도는 낮은 편이었다. 

연주 스타일

그의 화려한 기교와 화성 테크닉, 따뜻한 음색과 깊은 울림을 주는 연주는 마음과 감정을 움직이기에 한치의 부족함이 없다. 용수철과 같은 팔의 탄력과 엄청난 파워, 그 안에서 섬세하게 이루어지는 터치로 인해 연주의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며 본인의 철학이 담긴 음색으로 굉장히 아름답게 노래한다. 또 그가 치는 모든 곡들은 지독하리만큼 깊고 심각하며 항상 비장한 서사가 드러나는 면이 있는데, 극도로 집중력 있는 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에(소콜로프를 피아노의 도스토예프스키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해된다.) 시간이 지나면 청자가 조금 지치게 될 정도다.  그는 집약된 소리를 위해 페달 사용을 최대한 아끼며 웬만한 프레이즈는 논 레가토 주법으로 처리하는데 이러한 주법은 마치 손이 건반의 매우 높은 곳에서 춤을 추며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러한 타건 방식이 그의 차별화된, 집중력 있는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운드가 항상 건조하고 날카로운 것만은 아니다. 작곡가에 따라 울림의 깊이와 톤을 자유자재로,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연주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워낙 거대하고 극적인 해석을 좋아하는 성향의 피아니스트이다 보니, 항상 최대한 길고 화려한 버전의 악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 수 있다. 곡 전체에 3개의 Ossia가 있는데, 하나는 유명한 무거운 카덴차이고 나머지 둘은 3악장에 있다(소콜로프는 3개의 ossia를 모두 사용했다). 

(최근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우승할 당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에서 무겁고 화려한 임팩트가 있는 ossia버전이 아닌 오리지널을 선택했는데 이는 연주자의 성향과 음악에 대한 해석, 고민과 생각이 잘 반영되는 부분인 것 같다.^^)  필자의 개인적인 추억도 있다. 필자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하던 시절 라흐마니노프 3번 협주곡의 라이브 연주를 처음으로 보았는데 그때 연주자가 바로 소콜로프였다. 1악장의 피아노 첫 소절이 시작되었을 때 너무나도 예쁘고 구슬픈 음색에 정신이 멍 해질 정도로 짜릿했고, 3악장 피날레는 거의 엉엉 울면서 봤던 추억이 떠오른다.

은자적 피아니스트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라두 루프, 그리고리 소콜로프, 머레이 페라이어처럼 귀하게 여겨지는 연주를 하고 싶다."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13년 지휘자 로린 마젤과의 서울 협연을 앞두고 한국 언론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가 언급한 이 3명의 피아니스트는 금세기 최고의 연주가로 찬사를 받는 동시에 연주 무대를 많이 가려서 하기 때문에 이들의 연주 실황을 볼 기회가 드물어 팬들의 아쉬움과 서운함 또한 함께 따라온다. 그러나 조성진의 말처럼 이들의 연주는 존재 그 자체로 정말 '귀하고 소중'하기에 존경할 수밖에 없는 피아니스트들임에 분명하다.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한정적인 활동을 하던 소콜로프는 뛰어난 실력에 비해 조명을 받지 못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처럼 '은자적 피아니스트' '은둔형 괴짜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넓지 않았지만 소련 해체 이후 그의 음원들이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인지도도 급격하게 상승했다. 21세기가 되면서는 클래식 영상 전문가 브루노 몽생종과의 만남, 그리고 대망의 '유튜브(!)'의 등장으로 그의 연주들을 몰래 녹음한 수많은 음원들이 유튜브를 통해 알려지며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음반

스튜디오 리코딩을 꺼려했던 소콜로프지만 90년에 발매한 쇼팽 전주곡 파리 실황 음반이 황금 디아파종 상을 수상했고 Opus111이란 음반사를 통해 옛 음반들이 CD로 재발매되며 그의 연주는 다시 한번 초자연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쇼팽 에튀드 전곡집과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음반은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 최고의 명반으로 손꼽힌다.

2015년에는 나이가 들며 음반 발매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있었는지(좋은 쪽으로^^) 드디어 DG와의 음반 계약이 이루어졌다. 2008년 잘츠부르크 실황부터 현재 모차르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실황 음반까지 발매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소콜로프가 2000년대 중반부터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반 위의 구도자

"강원도에서 촬영이 끝나면 봉(준호) 감독과 함께 음악을 들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정말 행복하고 좋았다. 그와 함께 차를 타고 나가 그리고리 소콜로프 음반을 듣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봉 감독을 통해 소콜로프를 발견했고, 지금도 그의 연주를 자주 듣는다. 이렇게 유일무이하게 특별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함께 듣는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서로가 어떤 순간에 함께 살아낸 것처럼 매우 친밀해진다. 서로의 영혼이 음악을 통해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는 순간이다."(영화'옥자'의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 인터뷰 중에서)

 

'서로의 영혼이 음악을 통해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는 순간'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무이하게 특별한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 더욱 화려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늘 낮은 곳에서 건반 위의 구도자 길을 걷고 있는 그는 세계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며 이 시대 살아있는 거장으로써의 훌륭한 연주를 변함없이 들려주고 있다.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 (사진출처:유니버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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