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클라이번
미국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인 반 클라이번은 1934년 7월 12일 루이지애나 주의 슈리브포트에서 태어났다.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그는 어머니로부터 피아노의 기초 교육을 받았고(어머니 또한 줄리어드의 영재였고 리스트의 수제자 아더 프리드하임에게 사사한 바 있는 유능한 피아노 교사였다), 12세 때 텍사스 주의 음악상을 수상하며 뉴욕 카네기 홀에서 데뷔 무대를 가지는 등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17세에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원에 입학해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로지나 레빈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그녀로부터 러시아 낭만주의의 전통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었다).
1954년에 미국 국내 음악 콩쿠르 중에서 가장 어렵기로 알려진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하였고, 이후 미국의 저명한 교향악단과 협연을 거듭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지만 생각만큼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때, 1958년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23세의 나이로 출전하게 되었다. 이 콩쿠르는 아직 국교가 없던 구 소련(러시아)이 세계 최고의 콩쿠르를 만들고자 창시한 국제 대회로 클라이번은 처음 개최된 이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하였고, 당시 결선에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친 그의 연주가 끝나자, 감격한 관객들의 열광적인 기립박수가 8분이나 이어진 일화가 있다. 심사위원들도 따뜻한 낭만과 젊은 패기가 어우러진 그의 뛰어난 연주에 1위의 영예를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젊은 거장으로서 일약 미국의 영웅적인 존재가 된 그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대회에 미국인 피아니스트로 출전하여 우승하며 '미. 소 냉전시대 해방에 잠시나마 도움을 줬다', '음악으로써 냉전의 동서 양진영에 평화의 다리를 놓았다'라고 까지 격찬을 받으며 24세의 젊음으로 미국의 자존심을 세웠고 평화의 상징이 됐다.
(그의 귀국 환영은 찰스 린드버그가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하고 귀국했을 때의 환영 이래 최대 규모의 것이었다고 하며, 그의 인기 또한 러시아에서도 자기 나라 연주가들을 능가할 정도였는데, 사실 콩쿠르라는 음악가의 등용문을 통과한 젊은 연주자 중에서 그만큼 재능이 풍부하고 기회가 좋았던 사람도 그다지 많지는 않다.)
클라이번의 초창기 연주는 음이 맑고 밝으며 낭랑한 특징을 갖고 있다. 테크닉이 매우 뛰어나고 악곡의 해석도 유럽의 인습에 구속되지 않으며 미국다운 신선한 음악성을 이들 고전에 주고자 하는 의욕에 가득 차 있다. 훤칠하게 큰 키와 긴 팔, 큰 손에서 시원하게 건반으로 떨어지는 타격감이 시베리아의 거대한 영감을 담은 곡들을 잘 표현할 수 있었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명연주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 그 외에 각종 협주곡이며 리스트의 독주곡과 같은 대규모 적인 독주곡에서 뛰어난 해석을 보여주었다. 곡 라인업만 보아도 기교가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지금은 이 곡들이 누구나 치는 것처럼 느껴져도 당시에는 이런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는 것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곡들을 정말 완벽하게 쳐 내니 기교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은 클래식 음반 최초로 100만 장이 팔렸고, 빌보드 앨범 차트에 125주 동안 머물면서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젊은 패기로 아주 웅장하고 박력에 충만하면서도 섬세하고 성실한 작품의 이해를 보여주는 그의 연주는 '매우 환상적이고, 역사적인 연주'라는 찬사까지 받고 있다.
(필자 역시 중학교 때 피아노 선생님께서 빌려주신 LP판을 통해 처음 '제대로' 이 협주곡을 듣게 되었는데, 바로 '반 클라이번'의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실황 앨범에 실린 연주였고 그것이 나에겐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의 교과서와 같은 연주가 되었다.)
이처럼 현재 미국을 음악 강국으로 만드는 데에 큰 기여를 한 클라이번은 스케일이 크고 서정과 낭만의 향기 높은 피아니즘을 선보이며 낭만 피아노 음악의 뛰어난 해석가로서 활발히 활동했지만 화려한 등장에 비해 그 이후 연주에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드러나며 그의 풍부한 재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매너리즘에 빠져 한동안 연주계를 잠적하기도 했던 그는 1990년에 활동을 재개했는데 이후 수년 동안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전념하였다.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그의 업적을 기려 1962년부터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시에서 반 클라이번 재단 주최로 4년마다 열리고 있다. 한국인 중에서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017)이 한국인 최초로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고 2022년 6월에 대회에서는 임윤찬이 만 18세의 나이로 이 대회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우며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세계적인 대회이다.
2012년 골육종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던 중 2013년 향년 78세의 나이로 텍사스 포트워스에 있는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난 반 클라이번. 거의 흑백 연주 영상이 대부분이지만 그가 남긴 레코드들과 냉전시대 우주경쟁에서 뒤처지던 미국의 자존심을 적진 한가운데서 단번에 세워줬던 그의 위상은 전설적인 영상들로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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