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하스킬
🌹루마니아의 꽃, 음악의 힘으로 병마를 이겨낸 천재 피아니스트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유명한 여류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Clara Haskil/1895~1960)은 '루마니아의 꽃'이라 불릴 만큼 세계의 클래식 음악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이다.
시대의 고난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피아노의 성녀라고 평가받는 그녀는, 1895년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났다. 4세 때 아버지를 여의였지만,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5세 때, 한 번 들은 모차르트 소나타 한 악장을 그대로 외워서 연주했고, 조옮김을 한 후 한 번 더 연주할 정도로 음악과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7세 때 빈으로 이주하여 리하르트 로베르트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그 해에 데뷔했다. 11세 때는 프랑스 파리 음악원에 입학, 가브리엘 포레와 알프레드 코르토를 사사했고, 코르토가 3개월 만에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라고 혀를 내둘렀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파리음악원 입학 4년 만인 1910년, 14세에 불과한 나이로 피아노와 바이올린 부문에서 모두 수석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페루초 부조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의 반주자로 기용되었고, 루마니아 출신 선배인 바이올리니스트 조르주 에네스코와도 자주 협연했으며,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반주도 여러 번 맡는 등 미래가 촉망되는 피아니스트로써 앞길이 밝았으나, 18세 때 뼈와 근육, 세포까지도 모두 붙어버리는 무서운 병인 세포 경화증(다발성 신경경화증)을 앓게 되면서 장기간 요양하게 된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21년(26세)에 모차르트 작품으로 무대에 복귀한 그녀는 재기에 성공했고, 1924년부터는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을 여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유대인인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를 피해 마르세유로 피신하게 되었고, 뇌졸중과 뇌종양이라는 병마까지 그녀를 덮치고 말았다. 하나뿐이 없는 동생과 스위스에 살며 스위스 국적을 취득한 그녀는 50세가 넘어 연주활동과 녹음작업을 시작했고, 실명의 위험을 넘기는 등 병마에 시달리면서 활동을 계속했으나, 벨기에 브뤼셀에서 65세의 나이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연주활동과 음반
클라라 하스킬이 주로 연주했던 음악은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이었다. 담백하고 청아하며 순수했던 그녀의 음악 해석과, 청초하고 아름다운 터치, 단아한 연주 스타일로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서 존경과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마누엘 데 파야의 '스페인의 정원의 밤'과 같은 명반을 남겼을 만큼 섬세하고,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1950년을 전후로 하여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하스킬은 카라얀과 같은 저명한 지휘자와 협연하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 시기부터 1960년 65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필립스와 도이치 그라모폰 등 굴지의 레이블에서 리코딩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명반으로는, 1947년 카를로 제키의 지휘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1960년에 협연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24번, 1958년,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튀르 그뤼뮈오와의 앙상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1번 등이 있다. 특히 병마와 싸우며 만년에 녹음한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아들만큼이나 나이가 어린 그뤼미오와의 연주 모습은 천상의 2 중주처럼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고 한다.)와의 소나타 연주는 음악계에서 매우 높이 평가되었다.
클라라 하스킬 국제 피아노 콩쿠르
그녀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1963년부터 2년마다 스위스 베베이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딴 '클라라 하스킬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김선욱이 2005년, 17세의 나이로 클라라 하스킬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한 바 있다.
'모차르트의 환생, 모차르트 위의 모차르트, 20세기를 살았던 어떤 피아니스트보다 많은 신화를 남긴 피아니스트'라 서술되는 클라라 하스킬.
음악가 그 이상으로, 한 인간으로서 보여준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철학을 볼 수 있는 하스킬의 감동적인 회고록(자신의 삶에 대한)중 한 부분을 옮겨 적으며, 또 한 분의 존경하는 레전드 피아니스트에 대한 이번 포스팅을 마친다.
"나는 행운아였다. 항상 벼랑의 모서리에 서 있었지만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인해 한 번도 벼랑 속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신의 도우심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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