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굴다
빈 피아노계 3대 스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프리드리히 굴다는 파울 바두라 스코다, 요르크 데무스와 함께 빈 피아노계 3대 스타(비엔나 트로이카, 빈의 삼총사)로 유명하다. 1930년 5월 16일, 음악의 고장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그는 음악 애호가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7세 때 롤스크 음악원의 펠릭스 파초프스키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12세에는 빈 음악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알프레드 브렌델의 스승인 브루노 자이들 호퍼에게 피아노를, 미국의 거장 피아니스트인 루돌프 제르킨의 스승이기도 한 요제프 마르크스에게 음악이론을 배웠다. 그리고 16세가 되던 1946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유럽 각국에서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1949년에 Decca와 계약, 1950년에는 미국 카네기 홀 데뷔 무대에서 대 성공을 거두며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고전주의 음악의 독보적인 해석과 연주
굴다는 젊은 시절부터 빌헬름 박하우스나 빌헬름 캠프의 뒤를 잇는 정통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불렸다. 탁월한 기교에 활기가 넘치는 베토벤 작품에 대한 해석과 연주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968년에 녹음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리코딩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특유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하는 신선한 해석을 보여주어 극찬을 받았다.
베토벤 외에도 바흐와 모차르트, 슈베르트 연주 또한 정평이 나있다. 쇼팽, 드뷔시, 라벨과 같은 낭만주의 작곡가, 프랑스계 음악도 자주 연주하여 레퍼토리의 폭이 굉장히 넓다. 손가락이 아주 유연해서 자연스럽게 완벽한 테크닉을 구사하고 피아노를 매우 편안하고 쉽게 연주한다. 필립스에서 녹음한 바흐의 평균율 리코딩 또한 굴다의 현란하게 빛나는 기교와 해석으로 바흐 애호가들에 최고의 음반 중 하나로 손꼽힌다.
괴짜 피아니스트
굴다는 1950년 이후부터 클래식과 재즈 영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는데 자신의 리사이틀 프로그램에 본인이 작곡한 재즈 곡들을 포함시켰고 이때부터 '괴짜'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특히 무대에 오를 때도 연미복 대신 티셔츠에 색이 있는 안경, 모자를 쓰고 등장했으며 연주할 때의 표정이나 독특한 음악 해석으로 '괴짜'라는 별명에 설득력을 더해주었다(굴다 본인도 이 별명을 싫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협주곡을 연주할 때 오케스트라 파트까지 같이 치면서 연주한다던가 악보에 있는 화성 진행을 살짝 바꾸기도 하고, 없는 트릴을 넣어 연주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스킬(?)들을 구사하기도 했다. 그는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를 변화시키기를 원했다. 보수적인 음악교육 또한 비판하며 빈 음악 아카데미에서 받은 베토벤 반지를 반납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굴다를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고 언론은 그를 혹평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고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더욱 뜨거워져 재즈 음악에도 관심을 가지며 작품을 작곡하는 등 활동을 폭을 계속해서 넓혀 갔다.
재즈 뮤지션
1982년, 굴다는 재즈 피아니스인 칙 코리아(Chick Corea)와 팀을 이루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칙 코리아는 '일렉트릭 밴드'라는 단체를 만들어 빈의 재즈 음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인물이다. 물론 클래식계에서는 굴다의 이러한 시도 자체를 좋지 않게 보는 시선도 존재했고 결국 이 연주활동을 하며 '테러리스트 피아니스트'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그는 정통 클래식을 전공했으면서도 정통 피아니스트에 반대되는 연주활동을 자발적으로 해나갔다. 그래서 1980년대 이후에는 클래식 리코딩이 많지 않고 만년에 녹음한 실황들은 재즈 레퍼토리 또는 자작곡 등이 더 많다.
피아노의 거장이 된 그의 제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다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가장 유명한 그의 제자로는 블로그 세 번째 포스팅의 주인공 마르타 아르헤리치, 그리고 세계적인 지휘자인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있다. 특히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스케일이 아주 큰 낭만파 피아노 레퍼토리를 즐겨 연주하지만 그녀가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 고전 레퍼토리에서도 상당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것은 굴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재즈와 클래식 장르를 넘나들며 장르 간의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던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굴다는, 2000년 1월 27일,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그는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인 모차르트의 생일에 죽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말해왔는데 공교롭게도 모차르트의 생일은 1756년 1월 27일이다).
두 번의 결혼으로 얻은 세 아들 중 두 명은 현재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굴다는 아들 리코 굴다를 위해 'for Rico'라는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69세의 나이로 눈을 감을 때까지 조금도 식지 않은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도전적인 정신, 진정 음악을 즐기는 천재성과 절대 가볍지 않은, 우아함마저 느껴지는 그의 여유로운 연주에 존경을 표하며.. 오늘의 포스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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