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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특별한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Vladimir Ashkenazy

by pianovella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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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세계 3대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석권한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는 1937년 구소련의 고리키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모두 피아니스트였고 아쉬케나지 역시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7세에 공개 연주회를 열었을 정도로 음악 신동이었다.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예비학교와 국립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1955년에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2위, 1956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 1962년 러시아에서 개최된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영국의 존 오그돈과 공동우승)을 차지하며 일찍이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특히 쇼팽 콩쿠르에서는 폴란드의 아담 하라셰비치에 이어 2위를 했는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가 "2위가 1위가 되었어야 한다."라고 강하게 항의하면서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러한 파문이 아쉬케나지에게는 오히려 행운의 기회가 되어 결과적으로 더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콩쿠르 우승 이후 1960년대에 공산국가인 조국을 떠나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며 연주회와 리코딩에서 모두 주목받는 젊은 피아니스트로 각광을 받았다. 

 

연주 스타일과 음반

 

다른 거장급 연주자들에 비해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연주 스타일을 갖고 있다. 매우 학구적이며 모범적인 연주를 들려주는데,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개입시키지 않고 작곡가의 본래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기로 잘 알려져 있다. 풍부하면서도 서정성 넘치는 감성 표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아름답고, 바로크 시기의 음악부터 현대 음악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갖고 있으며 어떤 음악에서도 안정적인 연주를 보여준다. 기복이 적은 연주력 덕분에 여러 장의 전집 음반을 발매하였는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집,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 전집 등이 대표적이며 모두 호평을 받았다. 작은 체격이지만 손가락 끝이 민감하고 섬세하며 속도감이 있고, 쇼팽이나 드뷔시와 같은 섬세하고 세련된 음악 연주에 뛰어났다. 또한 협연이나 실내악에도 잘 어울리는 연주를 하기 때문에 실내악 명반도 많고 그중 대표적인 음반이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만, 첼리스트 린 하렐과 함께 녹음한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전곡 음반이다.

1970년대부터 지휘자로도 데뷔하여 피아니스트 활동보다 점차 그 비중을 늘려갔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프리드리히 굴다와 같이 '연주 겸 지휘'를 하는 모습은 역시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로열 필하모닉의 지휘자이자 음악감독,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와 독일 교향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 베를린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역임했고 특히 이 시기에 러시아 작곡가인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등에 탁월한 해석을 보였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체코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도쿄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았으며 2009년에는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겸 예술 고문직도 맡았다. 지휘 역시 오랜 기간 동안 그의 음악 활동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들이 대부분 지휘 활동에 전념하는 것과 달리 아쉬케나지는 피아니스트로서 음반을 꾸준히 냈다. 1999년에 쇼스타코비치 '전주곡과 푸가'음반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하였고 가장 나중 음반으로는 바흐의 '평균율'과 2007년에 발매한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이 있다. 혹자는 그의 연주가 '연주 자체는 훌륭하지만 개성이 부족하고 청중을 열광시킬 만한 임팩트가 부족하다'라고 지적하지만 그의 안정된 테크닉과 음악성, 리듬감, 음색 등 모든 부분에서 그를 넘어설 수 있는 연주자가 매우 드물다는 것에 반박하기는 힘들 것이다. 발매된 지 수십 년이 지난 그의 음반들이 여전히 클래식 팬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마음이 따뜻한 피아니스트

 

"과장 안 하고 우리 손가락 2개 합친 거랑 아쉬케나지 선생님 손가락 하나랑 같아!"  학창 시절 아쉬케나지의 마스터 클래스를 다녀온 친구가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장을 한 것 같지만 그만큼 아쉬케나지의 손가락은 일반적으로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던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사실 불리하다면 불리한 점일 수도 있는데 건반 넓이와 비슷한 굵기의 손가락으로 그렇게 섬세한 터치를 보여줄 수 있다니! 약점도 강점으로 변화시키며 폭발적인 음량과 완벽한 터치를 보여주는 아쉬케나지에게 더욱 존경심이 들었다. 

아쉬케나지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일화가 있다. 1997년 IMF 때 내한공연을 가졌던 그는 한국의 경제 상황이 극도로 좋지 않아 개런티를 20퍼센트만 받았다고 한다. 그의 따뜻한 인간성을 알 수 있는 이야기다. 그는 평소에도 성격이 털털하고 예의와 겸손, 배려가 몸에 배어있기로 정평이 나있다.

 

2020년 1월, 아쉬케나지는 84세의 나이로 음악계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자세한 이유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고령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와 관절염 때문에 손가락 3개가 기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피아노 신동에서 시작해 쉬지 않고 연주하며 다양한 활동으로 클래식 음악계에 크고 선한 영향력을 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그가 발매한 400여 개의 음반은 피아니스트로서 그가 얼마나 음악과 연주에 진심으로 임했는지, 음악가로서의 성실한 열정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의 <Favorite Chopin> 앨범 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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