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브렌델
뛰어난 기교와 아름다운 음색으로 금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프레드 브렌델은 1931년 1월 5일 체코슬로바키아의 소도시 비젠베르크에서 태어났다. 1934년에 유고슬라비아로 이주 후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유고슬라비아의 대표적인 음악 교육기관인 자그레브 음악원과 오스트리아 그라츠 음악원에서 정식으로 피아노와 작곡, 지휘를 수학했으며 16세 때 빈에 거주하면서는 독학을 하였다. 스위스에서 명 피아니스트 에드빈 피셔를 만나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브렌델은 화려하게 어필하는 연주보다 작품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해석을 추구하기로 유명한데 훗날 브렌델은 자신의 이러한 연주 스타일이 에드빈 피셔의 영향이며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이 생애에서 가장 큰 축복이자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1948년 17세의 나이로 그라츠에서 첫 번째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이듬해 1949년에는 이탈리아의 볼차노에서 열린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4위를 하여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빈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1963년에는 미국 무대에도 데뷔하였고 역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과 함께 런던, 파리, 뉴욕, 비엔나, 베를린, 뮌헨, 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대도시와 미국의 음악 축제에 초청되어 연주하였다.
연주 스타일과 레퍼토리
피셔에게 영향을 받아 지적이고 격조 높은 표현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의 연주 스타일은 기교의 화려함보다는 최대한 작곡가의 본래 의도를 살려 원곡에 맞게 충실한 연주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리스트를 잘 연주하는 연주자로 알려졌으나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부터 쇤베르크까지 매우 넓은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스타일을 바꾸었고 어느 작품에서나 매우 안정되고 높은 수준의 연주를 들려준다. '생각하는 피아니스트'라고 불려지는 것처럼 작품과 자신에 대해서 항상 엄격하고 늘 작품의 본래적 언어에 충실했다. 섣불리 레퍼토리를 넓히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하고 분석하여 신중하게 연주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도 빈틈이 없다. 그는 알프레드 코르토, 빌헬름 켐프, 아르투르 슈나벨에게 피아니스트로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아루트로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등의 거장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의 그의 연주는 청중을 자극할 만한 특별한 요소가 없어서 이른바 '빈 삼총사'로 불리던 프리드리히 굴다, 파울 바두라 스코다, 외르크 데무스 등 또래의 연주자들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꾸준히 자신만의 길에 집중하던 40대의 그에게 음악계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기 시작했다. 1982~83년 시즌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으로 7개국에서 총 77회의 리사이틀을 열었는데 티켓을 매진시키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1987년과 1988년에는 슈베르트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로 유럽, 러시아, 미국, 일본 등에서 순회 연주회를 열어 극찬을 받았다. 최근 기교가 화려한 피아니스트가 각광받는 세상에서도 그의 연주는 꾸준히 사람의 마음을 끄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최초의 피아니스트
부조니 콩쿠르 입상으로 세계 무대에 데뷔한 브렌델은 1952년 21세의 나이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첫 녹음하였고, 이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을 발매하였다. 이 음반으로 브렌델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최초의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는 자신의 경력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매우 유명한 레이블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작품 전곡을 녹음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되었는데 세세한 요소들보다 작품의 전체를 읽어내는 탁월한 해석 능력으로 표현한 그의 베토벤은 확실히 많은 피아니스트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으며 베토벤에 대한 그의 연구 또한 끝이 없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베토벤 피아노 스페셜리스트를 물으면 10명 중 7명은 브렌델을 이야기하고 필자 또한 처음 접한 베토벤 소나타 전곡 리코딩이 브렌델의 연주였다.
아름답고 풍부한 감성을 담은 그의 연주는 특히 슈베르트의 작품에서도 빛이 난다. 그는 슈베르트 소나타 C단조, 소나타 B장조 등 당시만 해도 거의 연주되지 않고 있던 작품들을 소개했고 독주 피아노곡 외에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가곡들과 실내악곡, 교향곡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주했다. 리스트, 협주곡을 포함한 브람스 작품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리코딩이 있으며 1980년대에는 하이든, 슈베르트, 브람스의 작품들을 더욱 성숙해진 음악성으로 재녹음하기도 했다.
지적이며 진지한 음악가
브렌델은 학구적이고 진지한 음악가이다. 눈부신 개성 없이도 조용히 자신만의 속도로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의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음악에 대한 진중함과 끊임없이 연구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작품 해석의 권위자로서 작품의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하고 60세를 넘긴 나이에도 새롭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사이클의 3번째 전곡 연주와 녹음에 도전하여 성공하였고 이론가로서도 강연, 집필, 악보 교정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1983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학위를 받았다. 작곡과 문학, 미술 등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90년에는 롭슨 서적에서 <Music Sounded Out>을 출간하여 찰스 하이치크 상을 수상했다. 활발하게 집필 활동을 해 온 그의 저서로는 <음악에 대하여>, <음악 해석의 빛과 그림자>, <피아노를 듣는 시간>등이 있다.
20세기 후반의 피아노 음악을 이끌어 온 거장
2008년 12월 18일, "올해를 마지막으로 연주활동을 접겠다."라고 이미 은퇴 선언을 했던 그는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 홀에서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를 끝으로 60여 년 간의 피아니스트 활동을 끝내게 되었다. 이날 연주한 곡목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9번인 'Jeunehomme('젊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작품이었는데, "때가 되었다"라며 떠나는 피아니스트의 은유적인 선곡이었다.
현재 90세의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개최하며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는 이 시대 진정한 거장, 알프레드 브렌델. 언제나 믿고 들을 수 있었던 브렌델의 연주를 콘서트 홀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마음씨 넓고 따뜻한 옆집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브렌델의 진심이 묻어나는 그의 수많은 리코딩으로 현존하는 거장의 연주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기에 아쉬움보다는 감사함이 더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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