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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특별한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Radu Lupu

by pianovella 2022.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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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두 루푸

 

'피아노 위의 수도사',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 '은둔의 연주자'로 불리며 이 시대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 유명한 라두 루푸는 1945년 11월 30일, 루마니아의 갈라쉬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이 매우 뛰어났던 그는 6세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이미 작곡을 하여 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남달랐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로 건너간 그는 1957년, 12세가 되던 해에 첫 리사이틀을 가지면서 피아니스트로 데뷔했고 그 후 6년간 앞서 포스팅했던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는 플로리카 무지체스쿠에게 사사하였다. 1960년에 장학생으로서 러시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여 6년간 그 유명한 네이가우스 부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966년, 미국에서 열린 제2회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와 이듬해 모국 루마니아에서 열린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서 잇다라 우승하며 국제적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는 제15회 우승자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올해 6월에 열린 제16회 최연소 우승자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통해 국내 클래식 팬들에게도 친숙한 대회이다. 2개의 주요 콩쿠르에서 연속 우승을 했지만 사실상 전 세계에 '라두 루푸'란 이름이 뚜렷이 알려지게 된 것은 1969년 리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부터이다. 리즈 콩쿠르 역시 우리나라의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18세의 나이로 최연소,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여 국내에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대회이다. 리즈 콩쿠르 우승 이후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긴 루푸는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미국 각지에서 연주활동을 하였고 모든 연주에서 호평과 극찬을 받았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명한 페스티벌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연주 스타일과 리코딩

 

루푸의 연주는 아주 정교하게 다듬어진 음색으로 아름다운 스토리를 그려낸다. 섬세한 터치로 영감이 깃든 연주를 들려주며 자신만의 개성을 녹여내면서도 항상 작품의 깊은 곳까지 연구하여 뛰어난 음악성을 표현한다. 맑고 상쾌한 아름다움이랄까. 자연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정돈되어있는 단아한 연주를 들려준다. 필자는 처음 루푸의 연주를 들었을 때 그의 긴 호흡과 안정된 터치가 만들어내는 재기 넘치고 반짝이는 표현에 반했었다. 그는 특히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의 작품에서 뛰어난 해석으로 인정받으며 음반 리코딩으로도 크게 성공하였다. 1970년부터 1993년까지 유명 레이블인 데카에서 20개 이상의 녹음을 했는데, 그의 솔로 음반에는 베토벤, 브람스, 그리그, 모차르트, 슈베르트, 슈만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으며, 협연은 베토벤의 모든 피아노 협주곡, 그리그와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곡이 수록되어 있다. 실내악 리코딩으로는 바이올리니스트 시몬 골드베르크와 함께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모차르트의 소나타 전곡'이 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함께 드뷔시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도 녹음하였다.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와 함께한 '네 손을 위한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피아노 작품, EMI 음반사에서 바바라 헨드릭스와 함께 슈베르트 가곡을 발매하는 등 굴지의 음반사에서 다양한 레퍼토리로 훌륭한 연주자들과 주옥같은 리코딩을 남겼다. 그 외에도 바르톡, 드뷔시, 에네스쿠, 야나체크 등 다른 작곡가들의 연주로도 유명하다. 1995년 루푸는 슈만의 피아노 음반으로 에디슨 상을 수상했고, 1996년에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음반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다. 

 

'은둔의 연주자'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

 

연주와 녹음 활동에 비해 언론 노출이나 인터뷰를 극도로 꺼렸던 루푸는 자신의 연주가 방송으로 중계되는 것 또한 허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은둔자적 면모를 보였다. 재능을 과시하지 않고 연주 횟수도 제한하며 무대에 자주 서지는 않았다. 피아노 의자 역시 일반적인 피아노 벤치가 아니라 반드시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요구했는데 정작 피아노 자체에 대해선 유난스러움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2012년 11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내한 연주 때도 호텔방에 전자 키보드 설치를 부탁하고는 한 번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 음악잡지 <그라모폰>의 비평가 롭 코완은 그를 '피아노계의 카를로스 클라이버'라고 말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지휘자들의 지휘자'로 존경받는 음악가였다. 루푸 역시 그를 추앙하는 음악가가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지며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아졌다. 앞서 언급했듯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루푸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했는데, 조성진은 정경화에게 부탁을 해서 루푸에게 레슨을 받기도 했을 만큼 그를 매우 존경했다. 

 

"루푸는 프레이징이나 음악적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능력도 탁월하지만, 실제 공연을 몇 번 봤는데 분위기가 정말 달랐다. 정말 어려운 경지인 '단순하면서 특별함'에 도달해 있었다. 하늘에서 신이 치고 있는 듯했다."(피아니스트 조성진)

 

"피아니스트들이 원하는 모든 걸 갖춘 연주자." (피아니스트 김선욱)

 

"고집스러울 정도로 탐미적인 음색에 집착했던 우리 시대의 마지막 음유시인. 어느 피아니스트도 낼 수 없는 다양한 차원의 수준 높은 음색들을 들려줬다." (음악평론가 허명현)

 

"루푸는 음악적 상상력과 디테일에서 완벽하며 음악의 흐름을 변함없이 이끌고 간다." (비평가 롭 코완)

 

귀한 연주들을 남긴 라두 루푸

 

지병을 앓던 루푸는 2022년 4월 17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스위스의 자택에서 타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어느덧 반년이 흘렀지만 필자를 비롯한 전 세계의 클래식 팬들에겐 갑작스러운 이 슬픈 소식이 아직 믿기 힘들고 여전히 그가 어디선가 연주하고, 녹음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을 잃었다. 수년 동안 보여준 우정과 지도에 감사하다."라고 말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고, 영국의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는 "루푸는 내가 들어본 가장 위대하고, 따뜻하고, 심오한 음악가일 뿐 아니라 친절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루푸가 정말 그리울 것."이라고 고인을 애도했으며 현재까지도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수많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애도의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피아노 위의 수도자'라고 불릴 만큼 경건하고 겸손하며, 자연스러움과 완벽함을 모두 갖춘 경지에 다다랐다 평가받았던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 그는 이제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그가 남긴 귀한 연주들은 영원히 우리의 가슴속에 울려 퍼질 것이다.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와 2013년 그에게 레슨을 받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조성진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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