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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아르헤리치3

[ 피아니스트 ] 이보 포고렐리치, Ivo Pogorelich 이보 포고렐리치 1980년, 제10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22살의 참가자 이보 포고렐리치가 결선에 진출하지 못하자,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그는 천재다"라고 강력하게 항의하며 심사위원직에서 사퇴했다. 일대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사건으로 그는 '우승자보다 유명한 탈락자' , '클래식계의 총아' , '건반위의 이단아'로 불리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독창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한 개성 있는 연주 스타일과 아이돌처럼 잘생긴 꽃미남 외모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 후 연주자로서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21살 연상인 자신의 스승과 결혼하며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던 피아니스트, 마치 영화 같은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바로 오늘 포스팅할 천재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다. .. 2024. 1. 5.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Artur Rubinstein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20세기 피아니스트 중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함께 최고의 연주자로 꼽히는 대표적인 거장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은 폴란드 출생의 미국 피아니스트이다. 1887년 1월 28일 폴란드의 바르샤바 근교에 있는 로지에서 당시 러시아 치하에 있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4세 때 공개 석상에서 연주했으며, 10세 때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하여 명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의 추천으로 리스트 문하의 명 교수 칼 바르트에게 사사했다. 그는 1905년 파데레프스키의 연주를 들은 후 스승 바르트에게서 떠나 파리로 옮겼는데 그 이유는 바르트의 엄격주의적인 예술보다 자유분방한 낭만적 예술에 더 끌렸기 때문.. 2022. 10. 9.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 마르타 아르헤리치 '피아노의 여제, 건반 위의 활화산'.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가장 유명한,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살아있는 거장인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1941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님은 교육열이 높았고 유년 시절의 피아노 교육은 주로 어머니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아주 혹독하게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8살 때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데뷔한 그녀는 타고난 재능에 노력까지 더해져 15살에 모든 테크닉을 마스터하였다. '프리드리히 굴다', '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등의 거장들에게 레슨을 받으며 유럽 각지에서 연주회를 열었고, 1957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열린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2022.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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